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라면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어려울 때는 서민들은 물론 위정자들 사이에서도 라면이 회자 되곤 한다. 소비자들의 라면 소비 행태와 라면 제조업체들의 제품 출시 경향 등 라면시장의 동향을 보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이 경제학이나 인문학적 영역에서 연구 가치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근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라면 가격도 내려야 한다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경제정책 책임자가 한마디 한 걸 두고 라면 업계가 라면 가격 인하를 고민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라면시장의 동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느냐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서민을 위한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민 음식 라면을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다룰 때에는 라면시장을 키우는 주역인 서민들이 라면시장 성장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서민들이 라면을 많이 먹으면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는 의미다. 어려운 서민들이 라면을 많이 소비하면 할수록 라면 제조회사들은 이익을 많이 남긴다. 이익을 많이 남기면 그 회사의 주가는 상승한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가도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라면 업계 1위인 농심의 주가는 20236월 현재 1주에 40만 원이 넘는다. 한 봉지에 880원짜리 농심 신라면을 먹는 서민이 농심의 주식을 사기는 쉽지 않다. 서민이 키운 농심의 주가 상승으로 인한 혜택은 평소 라면을 잘 먹지도 않는 부자들이 누린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서민들의 경제 사정이 좀 좋아지면 또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라면 회사들은 라면 가격을 올린다. 기존 제품의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니까프리미엄 제품을 새로 내놓고 서민들을 유혹한다. 서민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하도록 유도한다. 서민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라면 제품들의 가격은 1봉지에 아직 1,000원 미만이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1봉지에 2,800원짜리 제품도 있다. 서민들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길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60년의 한국 라면 역사에서 제조회사가 라면 가격을 내린 적은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2번에 불과하다. IMF 외환위기로 서민들의 삶이 힘들었던 1999년에 농심이 라면 가격을 내렸고, 2010년에도 국제 밀 가격 하락을 계기로 농심과 삼양식품이 라면 가격을 내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라면 시장 성장의 1등 공신인 서민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1963915, 10원짜리 삼양라면을 출시하면서 우리나라에 라면시장을 일군 삼양식품 창업자 고() 전중윤 회장의 일화를 모범답안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전중윤 회장은 직원들이 라면 가격을 올리자고 할 때 라면은 서민 음식인데, 서민들에게 부담이 된다면서 가급적 가격 인상을 자제시켰다고 한다. 또 매운 라면을 출시하자고 할 때도 매운 라면 먹고 국민들이 위장병에 걸리면 누가 책임지나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결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윤리 강화를 통해 인문학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면 회사를 키우는 주체는 서민이지만 그 혜택을 보는 쪽이 부자일 수밖에 없는 것은 라면 경제학이다. 그리고 라면시장을 키워준 서민들이 힘들 때 라면 가격을 내려 고통을 분담하고,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라면 인문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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