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이죽'을 대신하는 10원짜리 라면에서 '불닭볶음면'에 이르기까지 영욕의 세월

9월 14일 비전선포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김정수 부회장
9월 14일 비전선포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김정수 부회장

[컨슈머뉴스=김병조 기자] 우리나라에 인스턴트 라면이 도입된 지 60년이 됐다. 1963915일 삼양라운드스퀘어(삼양식품)에서 1봉지 10원에 판매한 삼양라면이 어느덧 환갑을 맞았다. 이에 삼양라면’ 60년의 여정을 짚어본다.

꿀꿀이죽 대신 라면을 먹이자

1957, 동족상잔의 참혹한 한국전쟁은 끝이 났지만, 전쟁 후유증으로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서울에서도 남대문시장 주변에서는 미군 부대에서 반출된 먹다 남은 음식으로 끓인 꿀꿀이죽을 먹는 시민들이 많을 정도였다.

이에 일본에서 라면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자가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삼양라면을 내놓았다. 창업자가 60년대 초에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든 작품이다.

당시 판매가격이 1봉지에 10원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20, 김치찌개 백반이 30원이던 시절이니 다른 음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5원짜리 꿀꿀이죽을 먹던 사람들도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서민 음식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출시 초기 삼양라면
출시 초기 삼양라면

농심과의 치열한 시장쟁탈전

1963년 삼양라면이 출시되자 2년 후인 1965년에 롯데라면이 출시됐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가 당시 일본 롯데에서 무역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체험했던 신춘호 입장에서는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형인 신격호 회장에게 라면사업 진출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하자 롯데공업이라는 회사를 차려 독립을 해서 1965년에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삼양라면이나 롯데라면 둘 다 초기에는 맛이 생소해서 한국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혼·분식 장려운동에 따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삼양라면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나 농심에서 출시한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5)이 잇따라 히트를 치면서 19851위 자리를 농심에 넘겨주고 만다.

삼양라면의 운명을 바꾼 우지파동

이미 시장 1위 자리를 농심에 넘겨준 삼양은 1989년 회사의 운명을 바꿔놓은 우지파동이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우지파동은 검찰이 삼양식품 등 일부 식품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쇠기름)를 사용한 식품을 생산해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검찰 발표 며칠 후 당시 보건사회부가 우지는 인체에 해롭지 않아 식용으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늘 그렇듯 이미 소비자 불신은 확산됐고, 삼양식품은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85년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농심에 넘겨준 상태에서 1989년에 터진 우지파동으로 인해 1990년 라면 시장점유율은 1위 농심이 60.2%, 2위 삼양은 15.1%로 추락했다. 19851위 자리를 넘겨줄 때만 해도 44.1%(농심)39.7%(삼양)이었는데 불과 5년 만에 격차가 4배로 벌어졌던 것이다.

창업자가 싫어했던 매운 라면으로 재기한 삼양식품

우지파동에다가 IMF 외환위기까지 겹쳐 부도를 내고 화의에 들어간 삼양은 창업자와 친분이 있는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도움으로 근근이 회사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창업자의 며느리이자 전인장 현 회장의 부인인 김정수 부회장이 시중에 판매되는 매운 불닭 음식에서 착안해 개발한 불닭볶음면을 출시하게 된다.

삼양식품을 재건시킨 '불닭볶음면' 
삼양식품을 재건시킨 '불닭볶음면' 

이 제품이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무너졌던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사실은 그전에도 회사 내부적으로는 매운 라면 개발을 수차례 경영진에 건의했지만, 창업자인 전중윤 전 회장이 국민의 건강을 우려해 반대해왔는데, 창업자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시점에 며느리가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회사를 되살린 셈이다. ‘불닭볶음면을 출시하던 해인 2012년에는 회사 전체 매출인 3,153억원에 불과했지만 10년 후인 2022년에는 8,332억원으로 확대됐으니 말이다.

1호 삼양라면 리뉴얼하며 환갑맞이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을 맞아 회사의 1호 라면 제품인 삼양라면의 맛과 패키지를 리뉴얼했다. 라면 면발에 감자전분을 추가해서 식감을 더 쫄깃하게 만들었고, 기본 맛은 햄 맛을 유지하되 육수와 채수를 강화해 감칠맛 나는 라면으로 변신시켰다. 또 포장지에는 한국 최초의 라면이라는 문구를 넣어 라면 원조의 자부심도 강조했다. 그리고 회사 이름도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하루 전인 914일에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바꿨다.

출시 60주년을 맞아 리뉴얼한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을 맞아 리뉴얼한 '삼양라면' 
삼양식품의 새로운 회사명 '삼양라운드스퀘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직원들
삼양식품의 새로운 회사명 '삼양라운드스퀘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직원들

전후(戰後) 굶주린 국민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선한 목적으로 탄생한 삼양라면, 지금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는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향후 60년도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서민 식품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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