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 20일(현지 시각) BBC가 방영한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 인터뷰의 한 장면. 이 인터뷰는 영국인 2300만명이 시청했다. (사진=BBC캡처)
1995년 10월 20일(현지 시각) BBC가 방영한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 인터뷰의 한 장면. 이 인터뷰는 영국인 2300만명이 시청했다. (사진=BBC캡처)

[컨슈머뉴스=조창용 기자] 제 아무리 공영방송이라도 기자 한명이 나쁜 의도로 전파를 낭비하면 '한방'에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22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1995년 10월 20일 영국인 2300만명이 BBC의 다이애나 왕세자빈 인터뷰를 지켜봤다. 다이애나는 “이 결혼에는 셋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복잡했다”고 했다. 남편 찰스 왕세자가 결혼 전 연인이었던 커밀라 파커 볼스(현재 찰스의 부인)와 결혼 후에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폭로였다.

다이애나는 남편의 불륜과 왕실 생활에 따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며 폭식을 하고 우울증에 걸려 자해 시도를 했다는 충격적인 고백도 했다. 인터뷰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과 회복 불능의 관계에 빠져 다음 해 찰스와 이혼했고, 1997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다이애나의 삶을 바꿔놓은 이 인터뷰가 방송된 지 25년이 흐른 지난해 다이애나의 남동생 찰스 스펜서 백작이 당시 누나가 BBC 기자 마틴 바시르에게 속아 인터뷰에 응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BBC는 퇴임한 대법관인 존 다이슨에게 독립적인 조사를 맡겼고, 다이슨은 6개월에 걸친 조사를 벌인 끝에 20일(현지 시각) 스펜서 백작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인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BBC의 다이애나 인터뷰가 방송 기자의 조작과 거짓말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26년 만에 공식 확인된 것이다. 세계 최초 공영방송이자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받는 언론 중 하나로 꼽히는 BBC의 역사상 큰 오점이 될 전망이다.

다이슨의 조사 결과 당시 바시르는 다이애나를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치밀한 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시르는 스펜서 백작에게 먼저 접근해 다이애나의 왕실 비서 계좌에 거액이 입금된 내역서를 보여줬다. 왕실과 MI5(영국 국내 정보국)가 다이애나의 사생활을 캐기 위해 비서를 돈으로 매수한 증거라고 했다.

또한 바시르는 왕실과 정보기관이 다이애나의 사생활을 캐기 위해 숙소와 자동차 내부를 도청하고 있다고 했다. 내밀한 정보를 내민 바시르를 신뢰하게 된 스펜서 백작은 바시르를 누나 다이애나에게 소개해줬고, 바시르는 다이애나에게 본인 입장을 밝히는 인터뷰를 할 것을 여러 차례 설득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다이애나에게 제시된 은행 계좌 내역서는 바시르 의뢰를 받은 BBC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정교하게 조작한 허위 문서로 밝혀졌다.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맷 위슬러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친구였던 바시르가 은행 서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실토했다.

왕실이 도청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이슨은 “바시르가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부적절하게 행동했고 BBC의 보도 기준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바시르의 해명은 상당 부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바시르는 조사 과정에서 “은행 서류를 위조한 것은 후회하지만 그것이 다이애나가 인터뷰에 응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 형제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BBC를 성토했다. 윌리엄은 성명을 내고 “(BBC가) 가짜 문서와 거짓말로 어머니의 공포를 자극하고 피해 의식을 불러일으켰다”며 “거짓말에 의해 응하게 된 인터뷰는 내 부모의 관계를 악화시킨 주된 이유였으며 수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다”고 했다. 해리 왕손은 “비윤리적인 (취재) 관행이 결국 어머니 목숨을 빼앗아갔다”며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이후에도 나쁜 관행은 더 심각해져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스펜서 백작은 1996년에도 바시르가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BBC는 자체 조사에서 바시르의 말만 듣고 문제가 없었다며 서둘러 종결했다. 이에 대해 다이슨은 “1996년 당시 BBC가 바시르의 주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윌리엄 왕세손도 “(BBC 자체 조사가) 끔찍한 무능을 보여준 것”이라며 비판했다. 윌리엄은 “가짜 뉴스의 시대에 공영방송은 매우 중요하다”며 “BBC의 잘못은 내 어머니와 우리 가족뿐 아니라 영국의 대중도 무너뜨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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