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우리가 의사를 부를 때는 의사님이라고 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교사(敎師)처럼 스승 사()자를 붙여 존경심을 표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만큼 사적인 이익보다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요리사(料理師)도 스승 사()를 붙인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 역시 의료행위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사명 의식이 필요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비록 요리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의사의 사()자를 판사(判事), 검사(檢事)처럼 사()자로 바꿔야 할 듯하다. 어떤 경우에도 환자를 지켜야 할 의사들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환자를 팽개쳤으니 말이다. 사명감이 없는, 그냥 직업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다. 10가지의 서약 중에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내용과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런데,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서를 내고 사실상의 파업을 한 전공의들은 의사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선언한 서약을 스스로 어겼기 때문이다.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할 의사들에게 암 환자가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니 말이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의료계의 과격한 단체 행동을 많이 목격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의약분업을 위한 약사법 개정을 둘러싼 의사회와 약사회의 싸움이다. 당시 양 협회가 내놓은 성명서 등을 보면, 이 사람들(의사, 약사)이 과연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섬뜩할 정도의 폭력적 언어가 난무했다. 모두가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었다. 30년이 지난 2024년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도 마찬가지다.

의사회, 약사회 등은 숫자도 많고, 사회적 상류층이다 보니 정치권도 이들에게 휘둘리면서 그들을 더 막강한 압력단체로 만든 측면도 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이들 단체는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그 지지를 받은 후보는 당선 후에 그들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는, 그야말로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의대 증원 문제도 역대 정권에서 의사 집단의 압력에 굴복해서 실현하지 못했던 해묵은 난제라고 할 수 있다.

노령인구가 급속히 늘어남에 따라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인데다가 응급실 뺑뺑이가 현실인 시점에서, 미뤄진 의사 인력 확대는 의료계의 반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더구나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개혁 과제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의료계의 반발은 명분이 없다.

나는 사회 초년 시절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그 병원 신경외과 과장이 자신의 진료실에서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선을 다해 지극정성으로 돌봤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자 자신의 의술에 대한 한계와 허탈함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의사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생명 중시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도 강한 직업이다.

요즘의 의사들에게 그런 사명감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담긴 서약이라도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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