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김병조 본지 편집국장

[컨슈머뉴스=김병조 편집국장] 친구와의 술자리에 친구의 아들이 낀 적이 있다. 친구와 나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동기인데, 친구의 아들도 K대학교에서 영문과를 졸업했다고 하기에 미국의 희곡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가 쓴 걸작 ‘Death of salesman’(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친구의 아들이 그 작품을 모른다고 했다. 학교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목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친구 아들은 ‘Death of salesman’을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는 거였다.

깜짝 놀랐다.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대학 영문과에서조차 불후의 문학작품을 가르치지 않고, 취업을 위한 공부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러다가는 영문과를 나온 사람이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시절이 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문학의 실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걱정도 됐다.

대학에서 당장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창의력과 융통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자연과학은 1+1=2를 가르치지만, 인문과학은 1+13이나 4가 될 수 있고, 심지어 0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가르친다. 그에 따라 자연과학도는 주로 한 우물을 판다. 그 우물에서 물이 나오면 성공이고, 자기의 선택(기술)에 프라이드도 갖는다. 반면 인문과학도는 우물을 팠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면 다른 곳도 뚫어본다.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창의성이 발휘되고 융통성이 생긴다.

사회는 자연과학도 필요하고 인문과학도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여 년 전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연과학도들의 집합체인 포스코에서 당시 회장이 임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인문학 교육을 받도록 한 적이 있다. 자연과학에만 치우친 임원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친구 아들의 모교인 K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한 유명한 심리학 교수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창의를 저해하는 대학은 없어져도 된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했다. 그 말 속에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도외시되고 있는 안타까움도 묻어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은 존폐의 기로에 있다. 출생인구 감소로 인한 입학인구의 감소가 대학의 경영위기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대학교육의 본질적인 가치일 것이다. ‘대학, 꼭 가야 하나?’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학들이, 그리고 교육 당국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즐길 정신적 여유가 없고, 철학적인 사유를 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기회도 없다면 청년들에게 대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본질적인 문제를 놔두고 대학입시에 교과서에서 배운 문제만 내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이나 벌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최근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전남 함평의 어느 중학교 1학년 여학생 5명이 장래희망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한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은 함평군수등등 말하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은 건물주라고 답했다. 14살 중학교 1학년도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 군수 못지않게 건물주가 유망한 직업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시대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상의 지식을 아이들은 습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 그리고 우리의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 그 소녀의 장래희망 건물주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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