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선진국
가불선진국

[컨슈머뉴스=이태림 기자]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것일까? 선진국이라는 기준에 따라 대한민국은 범주 안에 들었다, 벗어나는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만약 경제 지표만을 바라본다면, 수출입만으로 판단한다면 대한민국은 무난히 경제 선진국에 이름을 등록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행복도와 자살률, 삶의 만족도를 바라본다면 높은 확률로 선진국과 거리가 멀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조금 나쁜 행동은 눈을 감고, 몰염치하더라도 모른 척 지나갔다. 옆집에 살던 노인이 굶어 죽어 세상을 떠나도 약간의 안타까움만을 남기고, 지하에 사는 아이가 밥을 먹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더라도 모른 척 눈 감았다. 

또 군대에서 병사가 괴롭힘을 당해 자살해도 약간의 관심만 가질 뿐 금세 잊히고,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상가에서 내쫓아진 임차인이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도 혀를 끌끌 찰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나, 혹은 내 주변을 팔아서 대한민국이라는 허울뿐인 실체를 드높였다. 분명히 우리는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왔고, 결국 경제 측면에서는 세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정도의 결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선진국 대한민국의 함성 밑에는 수많은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울분이 가득 담겨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저자 조국은 ‘가불선진국’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둠을 비추고, 빛을 감싸 안았다. 그는 책에서 “‘사회권 보장’을 통해 그동안 소외돼온 약자층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가불’했던 ‘빚’을 갚고 지속 가능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 조국의 바람과는 달리 시대의 상황이 거꾸로 가고 있다. 새롭게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가 소외된, 기업 위주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게다가 취임식 현장에도 대한민국 10대 기업을 포함한, 벤처기업 등 돈이 되는 업체들만 잔뜩 모아놨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고자 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겠지만, 저자 조국이 말한 것처럼 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가불’은 더는 이뤄져서는 안 된다. 윤 정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시대의 흐름에 거꾸로 흐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한 희생, 국가에 헌신하며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한다는 말로 내 목숨과 노동력을 바치는 시대는 지났다. 정당한 노력의 결과를 보상받고, 내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는 커다란 울타리가 필요할 때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실제 목숨의 위협보다 경제적 위기가 더욱 두렵다. 강남의 세 모녀 자살 사건과 같이, 당장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단지 살아있다는 사실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목숨만 연명하는 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원하는 행동을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대한민국의 수많은 시민은 자유를 얻지 못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동안 국가에서 내게 가불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한다. 세금을 포함해 나의 노동력, 4대 의무 등 우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해왔다. 

또 기업에 우리는 큰 노력을 펼쳤다. 국산을 애용하고, 국내 기업이 힘들다고 하면 상품을 구매하며 힘을 보탰다. 카카오 같은 경우만 봐도 국내 이용자들을 위주로 기업이 운영되니, 그야말로 우리에게 가불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평등한 분배를 원하지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욕심과 기준이 있으므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만 최소한의 아니, 최대한 할 수 있는 분배를 이뤄내며 그나마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게 가불 선진국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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