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못하다면 공정하기 위해 혁신하는 것이 순리

[컨슈머뉴스=이계민 연구위원]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실물경제가 결딴날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는 판국에 정부와 여당은 기업의 숨통을 더욱 조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달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고발이 없더라도 중대한 담합행위 등에 대해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속고발권은 지금까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없어지면서 공정위 고발 없이도 검찰의 기업수사가 가능해졌다. 기업입장에서는 검찰 무서워서라도 법을 어기지 않고 경영을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검찰의 수사는 고발이 있어야 가능한데 고발이 없이도 가능하다면 기업을 수시로 수사할 수 있는 우려가 생긴다. 특히 거래상대방에 대한 고소고발이 늘어나면 상거래질서를 혼탁하게 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 기업의 우려하는 바다.

공정거래법에서 전속고발권제도를 도입한 것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발전을 위해 검찰 수사를 포함한 공적규제는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쟁질서의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공정위라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으로 하여금 먼저 판단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다.

즉 경쟁 질서를 침해했느냐 여부를 따질 때는 경제여건이나 시장상황, 그리고 시장구조 등과 연계해서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런 취지에서 공정위라는 준사법적 합의제의결기관을 만들어 두고, 이의 판단 및 처리를 전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형사법적 시각으로 법위반 여부를 다루게 되면 자칫 역동적이고 복잡다기한 경제현상을 간과할 가능성이 커 공정거래법 정신과 입법취지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법조항의 취지를 이해한다면 이번 전속고발권 폐지 합의는 시장경제를 이해하면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인 공정위는 국가가 부여한 ‘시장경쟁질서 유지’라는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법률적인 측면의 당위성이나 찬반의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현상으로 보면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기업의 이윤추구행위가 형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본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물론 경쟁질서의 저해 정도가 심하면 형사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먼저 공정위가 판단해보라는 것은 그만큼 복잡다기한 경제현상을 이해하고 신중히 다뤄야함을 강조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공정하지 못해' 전속고발권을 검찰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공정하지 못하면 '공정하도록' 혁신해야 할 일이지 본연의 임무를 포기하라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의 실시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의에 맞게 추진해야 정책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반대로 시의에 맞지 않으면 효과는커녕 반발에 부딪혀 부작용만 키울 공산이 크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개정이 꼭 그런 시의에 맞지 않은 케이스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싶다. 세계경제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데 한국경제는 경기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자리 참사’로 규정된 지난 7월의 고용동향지표를 보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영세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1998년의 외환위기 상황에 버금가는 위기 국면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최악의 고용위기 상황을 놓고 여당 대표와 유력한 차기 대표후보자는 지난 보수정권의 탓으로 돌리는 유치한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당 대표에 출마한 이해찬 의원은 지난 20일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살린다고 26조~27조원 정도를 쏟아 부은 바람에 다른 투자가 굉장히 약해졌다”면서 “이를 4차 산업혁명 쪽으로 돌렸으면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이 많이 돼서 산업 경쟁력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금의 어려움은 수년전부터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경제체질 때문”이라고 지난 정권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작년부터 일자리 창출에 수조 원을 쏟아 붓고도 ‘일자리 참사’로 나타난 결과는 왜 외면하고 언급이 없는지 궁금할 뿐이다.

지금의 경제악화는 상당부분 기업 옥죄기에 기인한다는 진단도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은 근본적으로 기업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지금 대기업들에 대해 이런 저런 범법행위를 내세워 경찰이 조사하고,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대기업 일가를 차례로 일명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고 있으니, 다른 대기업들로서도 남의일이 아닐 것이다. 이를 보면서 기업할 의욕이 왕성하게 생긴다면 이상한 기업이거나 기업인일 것이다.

사실 공정거래법의 개정은 ‘전속고발권 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시대적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경제력 집중완화를 규정한 재벌정책을 폐지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의 1등기업만 살아남는 글로벌 경쟁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재벌의 지배구조 청산을 필두로 투자행위 마저 맘대로 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나 투자는 자율에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의 장점이다.

공정거래법이 더 이상 재벌규제법으로서의 위력을 버리고 법률명칭이 의미하듯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잘못을 규율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면 대기업 그룹으로 편입돼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규제 때문에 중소기업으로 남아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는 웃지 못 할 현실은 한국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 우스갯거리’ 아닌가 싶다.

공정위는 본연의 임무라 할 수 있는 시장경쟁질서 확립이라는 임무를 포기하고 전속고발권을 검찰에 넘겨준 점을 깊이 되새겨봐야 한다. <출처 : (사)국가미래연구원>

[이계민 연구위원]
[이계민 연구위원]

 

컨슈머뉴스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컨슈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