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생활방식

 

[프로컨슈머뉴스]농부의 삶은 끝났다.

씨를 뿌려 뿌리를 내리고, 그것이 자랄 때까지 주야로 보살펴 그 수확을 먹고 다시 그 씨를 심는 무한반복의 삶, 먹고사는 것을 위해 비슷한 일 년을, 비슷한 한 달을, 비슷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돌고 도는 삶의 방식 말이다. 식물의 생장주기에 내 시간과 습관과 원함, 자유까지도 구속해야 하는 주체가 뒤바뀐 삶의 방식 말이다.
이와 정 반대의 생활 방식을 ‘노마드(nomad)’라 부른다. 노마드의 삶은 목축(pastoralism)을 하면서 물과 풀을 따라서 옮겨 다니는 유목민, 방랑자의 삶이다.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의 어원은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된 것으로 노모스는 관습이나 법 이외에 ‘경계 없는 공간’, '함께 나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며 노마드는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고 했다.
식물이 생장하는 원리를 파악해 예측가능한 수확물을 얻는다는 점에서 농업은 수렵채집보다 자기주도적이며 고등한 생계수단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어느 샌가 우리는 농부의 삶을 예찬하기 시작했다. 불확실한 것은 나쁘고 힘든 것이며, 고정되고 지속적인 것이 옳은 것이라는 믿음이 자라났다. 지금도 ‘뿌리를 내리다’라는 말을 무의식중에 번성과 안녕의 의미로 해석하곤한다.
그러나 정주(定住)하는 삶의 방식은 최근에 도입된 것이다. 빠르면 17세기, 늦게는 20세기 부터 시작된 녹색혁명을 농업혁명의 시대로 구분한다. 반면, 인류는 250만년이라는 역사상 가장 기나긴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환경과 응전하며 수렵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집단을 꾸렸다. 방랑은 인류에게 가장 오랜, 익숙한 방식인 셈이다.
모든 가능성과 동시에 모든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해결방법을 찾고, 때로는 적응하면서 흐르는 물처럼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며 사는 것이 인류의 역사를 가장 오래 지배했던 삶의 방식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을 멀리서 볼 수 있다면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먹구름으로 뒤덮힌 모습일텐데,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착하고 뿌리 내리는 삶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인간이 개발한 지식과 기술로 변수를 줄이고 통제하고 예측가능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발현일테다.
안정의 욕구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 중 하나인지라 이를 폄하할 수 는 없다. 그러나 더 이상 농부의 삶을 최선이라 말 할 수 없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화와 혼돈의 시대,  인터넷으로 이어진 초국가의 개념이 국경으로 분리된 국가단위를 포괄하는 시대, 협업과 공생의 시대, ‘함께 나눈다’, ‘경계 없는 공간’이라는 뜻을 품은 ‘노마드’가 예측가능하고 규칙적인 농부의 삶보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더 적합한 ‘직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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