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의 GDP비중은 87.3%에서 103.8%로 불과 5개년 만에 16.5%p 증가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GDP비중은 87.3%에서 103.8%로 불과 5개년 만에 16.5%p 증가했다. (사진=픽사베이)

[컨슈머뉴스=조창용 기자]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최고치로 치솟자 인플레이션 공포때문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조기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는 한국도 부채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어 '강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이다.

10일 이데일리에 따르면, 이날 미국 노동부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5.0%를 기록했다고 알렸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4.7%)를 상회했다. 2008년 8월(5.3%) 이후 거의 13년 만에 가장 높다.

가장 높이 뛰어오른 건 에너지 분야다. 특히 휘발유 가격은 1년새 무려 56.2% 치솟았다. 국제유가가 60달러 후반대로 급등하면서 덩달아 상승했다. 중고차와 트럭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29.7% 폭등했다.

전월 대비 CPI 상승률은 0.6%로 나타났다. 이 역시 당초 전망치(0.5%)를 웃돌았다. 지난 3월 이후 전월 대비 CPI 상승률은 0.6%→0.8%→0.6%로 갈수록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근래와 비교한 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것은 팬데믹 초기였던 지난해 이맘때 경기 침체가 가속화한데 따른 ‘기저효과’만으로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를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급등했다. 1992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WSJ는 “경제 정상화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며 “노동력 부족 현상까지 겹치며 많은 기업들이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했다”고 전했다. CNBC는 “팬데믹 내내 가혹했던 규제가 풀리면서 여러 부문에 걸쳐 물가가 올랐다”고 했다.

미국 내 백신 보급 확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이날까지 미국 내 18세 이상 성인 중 코로나19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한 이는 전체의 63.9% 비중이다.

상황이 이렇자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가 바뀔지 이목이 모아진다. 월가에서는 오는 15~16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때 테이퍼링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예상보다 큰 폭의 인플레이션이 확인된 데다 고용시장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나온 고용지표는 호조를 이어갔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37만6000건으로 전주(38만5000건) 대비 9000건 감소했다. 팬데믹 직전이던 지난해 3월 둘째주 25만6000건을 기록한 이후 가장 적다. 주간 실업수당은 2주째 40만건 아래로 내려왔다.

한국, 가계 및 기업부채의 GDP비중 추이(%)(사진=한경연)
한국, 가계 및 기업부채의 GDP비중 추이(%)(사진=한경연)

한편, 한국의 민간부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가계와 기업부채는 이미 GDP를 상회하고, 특히 가계부채는 소득보다 더 빨리 늘어나 상환능력마저 크게 취약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BIS(국제결제은행), OECD 등의 통계를 활용해 2016년 말부터 2020년 말까지의 최근 5개년 우리나라 민간부채 추이를 분석한 결과, 가계부채의 GDP비중은 87.3%에서 103.8%로 불과 5개년 만에 16.5%p 증가했다. 동일 기간 중 가계부채의 GDP비중 증가폭이 세계평균(43개국) 11.2%p, G5 6.4%p 이었음을 감안할 때 빠른 속도다.

우리나라의 기업부채 증가 속도 역시 G5 국가 보다 빨랐다. 한국기업 부채의 GDP비중은 2016년 말 94.4%에서 2020년 말 111.1%로 16.7%p 증가했다. 동일 기간 중 세계평균(43개국)은 18.0%p, G5는 14.9%p 늘어났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최근 5개년(2016~2020년) 우리나라 민간부채 증가 폭은 33.2%p로 과거 미국의 금융위기 직전 5개년(2003~2007년) 증가 폭인 21.8%p를 상회할 만큼 그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며 "양질의 일자리 확충 등으로 소득을 부채보다 빠르게 증진시켜 민간부채 비율 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한경연)
(사진=한경연)

한국도 최근 커지고 있는 물가 상승 압력과 경기 회복 속도가 지속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년 넘게 이어온 완화적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서서히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상 시점을 둘러싼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예정보다 조금 앞당겨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장에서도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그간 초저금리에 대출을 받아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에 투자해온 사람들이 내야 하는 이자가 늘면서 가계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빚은 올해 1분기 말 사상 최대인 1765조원을 기록했다. 코로나로 인한 생활고,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대출, 주식시장 활황에 신용대출까지 끌어다 쓰는 ‘빚투(빚내서 투자)’가 겹친 결과다. 정부의 대출 규제에도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한은도 가계부채 급증과 이로 인한 시장 과열을 우려해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라는 긴축 신호를 먼저 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27일 “금리를 인상하면 가계의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지속되면 부작용이 더 크다”면서 “그것을 다시 조정하려면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증가세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지난 2017~2018년과 마찬가지로 한번에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인상의 선제 조건으로 ‘코로나 불확실성 해소‘를 꼽았다. 백신 접종이 늘어 정부 목표대로 11월까지 집단면역을 달성한 뒤 경기 회복세가 지표로 나타나면 한은도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설명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집단면역 목표를 달성하고 소비나 고용이 정상화된 것을 지표로 확인한 뒤 한은도 (금리인상)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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