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뉴스=조창용 기자] 한국의 삼성·현대차·LG·SK·CJ·롯데·한화 등 재벌그룹들의 기업지배구조 순위가 10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대표 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담은 개정 상법이 통과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차등의결권 허용과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임원후보 추천위원회 등이 한계로 지적됐다.

7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보고서 ‘CG Watch 2020’을 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는 9위를 기록했다. 인도, 태국보다 낮은 수준이며, 2010년 이후 줄곧 8~9위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상법 개정과 ‘5% 룰 완화’ 등을 거론하며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관투자가가 상장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 목적과 변동 사항을 보고·공시하도록 하고 있는 ‘5% 룰’을 지난해 1월 완화해 기관투자가와 일반 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도록 했다.

보고서는 또 2019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지배구조 공시가, 올해 1월부터는 상장회사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공시가 각각 의무화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정부의 차등의결권 허용은 개혁을 후퇴시키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정부는 벤처투자 활성화를 내세워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차등의결권 허용이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활용될 수 있다는 비판에 막혀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ACGA는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위해 회사법이 개정되고 발행 대상도 기존 상장회사로 확대될 경우에는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순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배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 점도 한계로 꼽았다. ACGA는 “한국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주주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도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을 인수할 때 지배주주에게만 프리미엄을 주고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정작 위원장은 사내이사가 되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실제 2019년 기준, 기업지배구조원 조사를 보면 상장회사 174개 중 18개만이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회의를 열어도 후보군을 확정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유능한 후보를 어떻게 발굴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 횟수는 미미했다.

ACGA는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조건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재벌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 로드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또 “이사후보 추천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위원회 구성, 사외이사 자격요건 검토와 함께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 소수주주의 권리를 높이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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