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몰린 자영업자 유입 때문...묻지마 보험계약 늘어날 수도

신규 지원자 수도 이례적 수준
입사 문턱 낮고 정착수당 지급
불황 때 설계사 늘어나는 경향

[컨슈머뉴스=송진하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후 보험설계사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설계사 증가는 한계에 내몰린 서민·자영업자들이 새로운 생업전선에 뛰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주목된다. 과거 금융위기 때도 경제가 위기 상황을 겪으면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접고 보험설계사 시장에 유입되는 사례가 있었고 이번에도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라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24일 매일경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1년간 보험설계사가 1만5000명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17만명 안팎을 유지하던 손해보험사 설계사는 지난 2월 18만7160명까지 치솟았다. 생명보험사 설계사도 2월 11만명을 넘어섰다. 설계사 수가 늘면서 지난해 말에는 생·손보설계사가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보험 업계는 설계사가 늘어난 배경 중 하나로 자영업자 몰락을 꼽고 있다. 당장 임대료도 내기 힘든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사업장을 폐쇄하고 보험설계사 등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자영업자는 월평균 553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5000명 줄었다. 창업보다 폐업이 7만5000명 많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A보험사에 최근 입사해 교육을 받고 있는 김 모씨는 지방대 인근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다 설계사 길로 들어선 경우다. 지난해 대학이 코로나19로 사실상 문을 닫자 김씨는 수입이 급격히 줄었고, 결국은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해 이를 폐업한 뒤 보험설계사를 선택했다.

보험설계사는 입사 후 교육 기간 동안 정착수당 등 명목으로 일정 수준의 월 급여를 보장받는다. 이후 지인 등을 통해 약간의 영업만 성공한다면 고객관리수당 등도 받을 수 있어 월평균 200만원가량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자신이 발로 뛰어다니는 만큼 수입도 비례해 늘어나는 구조다. 영업이 힘들지만 최소 1년간 큰 무리 없이 최저 생활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불황 때마다 설계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보험설계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7년 말 6만6537명이던 손해보험사 설계사 수는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2009년 말 15만7473명까지 두 배 이상 늘었다. 생명보험사 설계사도 같은 기간 11만1629명에서 13만3304명으로 2만명 이상 증가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금융회사 중 상당수가 도산하면서 보험설계사 숫자가 줄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국내 금융사가 튼튼하게 버텨주면서 자영업자와 퇴직자 등이 대거 보험설계사 길로 들어섰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보험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젊은 여성들의 보험설계사 진입이 두드러졌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업종에서 근무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항공사 스튜어디스 취업준비생이나 여행업 종사자가 대표적이다. B생보사 보험설계사로 지난여름 취업한 최 모씨는 "졸업 후 스튜어디스 취업을 꿈꿔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항공사 취업 문이 열리기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험 업계는 설계사가 늘어나면 신규 계약 체결 건수도 증가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많다. 이 때문에 초기에 정착수당 등을 지급하면서까지 우수 인재 유치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보험 계약자들이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롭게 보험사에 취업한 사람들이 1년 이상 근무하는 비중인 정착률이 2019년 45.75%에 불과하다"며 "설계사 2명 중 1명꼴로 1년 안에 이직이 이뤄져 계약을 책임져야 할 설계사가 사라지는 일종의 '고아계약'이 양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민·자영업자들이 보험설계사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 분야도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강화되자 보험설계사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보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1차 유행기인 지난해 2월 직후 3월, 4월, 5월의 생명보험 전속설계사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6.8%, 4.9%, 6.3%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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