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국내 고용 불안 '야기' 이유로 해외투자 '반대'

[컨슈머뉴스=정성환 기자]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대미(對美) 투자에 열을 올리고 나선 가운데 막상 노조등 노동계에서는 이들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빌미로 한미정상회담을 이용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대차 노조의 경우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8조1000억원(74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 속에서 친환경차 관련 일자리를 국내에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일 서울신문에 따르면 삼성은 오는 21일 열릴 한미정상회담 경제사절단에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동행한다. 미국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삼성전자의 투자를 늘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삼성전자가 백악관이 주재한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20일 미국 상무부 주최 화상회의에 초청받은 것은 일종의 ‘투자 압박’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현재 170억달러(약 19조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오스틴시 등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증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금 감면 혜택 등 인센티브 협의가 끝나면 공장입지를 최종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미정상회담에 맞춰 미국산 코로나19 백신의 위탁생산 계약을 따내는 데 주력한다. 존 림 삼성바이오 대표가 19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미국 모더나와의 계약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이번 정상회담을 미국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친환경 전기차 확대 정책을 공약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과 현대차의 전용 플랫폼(E-GMP) 전기차 ‘아이오닉 5’ 출시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달 앨라배마주 공장을 찾아 아이오닉 5 생산이 가능한지 점검한 뒤 미국 투자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전기차 현지 생산체제 구축을 비롯해 수소 인프라 확장,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등에 총 74억달러(약 8조 3000억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순방길에는 정 회장 대신 공영운 사장이 동행한다. 미국 정부는 현대차를 통해 미국 내 전기차 보급률을 높일 수 있고, 현대차는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어 ‘윈윈 투자’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현대차 노조가 “전기차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국내 공장 일감이 줄어든다”며 반대하고 나선 건 걸림돌이다.

SK와 LG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 내 배터리 영토 확장을 본격화한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3, 4공장 추가 건설을 검토 중이다. 투자 규모는 총 6조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도 논의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경제사절단 대표 자격으로 직접 방미길에 오르는 만큼 미국 현지에서 공식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최 회장은 미국 노바백스와 백신 위탁생산 및 기술 이전 계약을 맺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앞세워 미국 측에 백신 생산량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배터리 합작공장(얼티엄셀즈)을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 두 곳에 짓기로 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눈도장을 받았다.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는 김종현 사장은 미국 측과 추가 투자를 비롯해 투자 규모 조율에 나선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총 5조원을 투자해 미국에 독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12~14일 울산에서 임시대의원회의를 열고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요구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12~14일 울산에서 임시대의원회의를 열고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요구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

한편, 현대자동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놓고 노동조합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노조가 공개적으로 해외 투자 반대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르면 이달 말 열리는 현대차 노사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단체교섭도 난항이 예상된다.
 
17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는 성명서를 내고 "사측의 일방적인 (미국) 투자계획에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며 "해외공장 투자로 인한 조합원 불신이 큰 마당에 노동조합과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5만 조합원과 노동조합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밝혔다.

노조는 "투자계획부터 생산개발 과정까지 노동조합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충고를 내 팽개치는 행위"라며 "친환경차 확산, 모빌리티,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산업이 격변하는 시대에 회사 발전과 조합원 고용보장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노사관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부품수급 문제 등 해외공장 문제점은 너무도 많다"며 "해외공장을 확대하기 보다는 품질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중심의 국내 공장을 강화하고 신산업을 국내공장에 집중 투자하는 길이 현대차가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어 "국가간 관세 문제로 일정 정도의 해외공장 유지는 부정하지 않지만 현재 수준으로도 충분하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한 선물용이라면 더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미국 투자 결정에 대해 노조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올해 임단협 교섭도 지난해와 비교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현대차 노조는 17일 임금 9만9000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성과금으로 순이익의 30% 지급, 정년 연장(만 64세) 등을 골자로 한 2021년 임단협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다. 현대차 노사는 이르면 이달 말 임단협 상견례를 할 계획이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2021년 단체교섭 별도 요구안으로 ‘미래산업 특별협약’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변화 속에서 친환경차 관련 일자리를 국내에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성명서에서도 노조는 “지금은 해외 공장을 확대하기보단 고부가가치 중심의 국내 공장을 강화하고, 4차산업으로 인한 신산업을 국내공장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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