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뉴스=김현지 기자]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는 뜻의 신조어 '허버허버'와 매우 많음을 뜻하는 신조어 '오조 오억'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허버허버와 오조오억은 몇년 전부터 SNS를 중심으로 유행돼 유튜브, 광고, SNS 게시글 등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됐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일부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단어가 '남성 혐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 퍼졌다. 

그들은 허버허버의 경우 남성이 급하게 먹는 모습을 나타냈으며 이는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 비하 표현이라 주장했다. 오조오억 역시 남성의 정자가 쓸데없이 5조 5억 개나 된다는 뜻이 들어있는 혐오표현이라 꼬집었다. 이런 억지스러운 주장으로 여러 컨텐츠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버웹툰 '바른연애 길잡이'와 유튜버 '릴카'의 영상, '동원참치 광고' 등 해당 용어가 나온 컨텐츠에 무자비한 댓글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컨텐츠 제작자가 사과하고 해당 부분을 수정 및 삭제했다. 심지어 카카오톡의 한 이모티콘의 경우 '허버허버'라는 단어가 들어있어 해당 이모티콘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우선, 대부분이 해당 용어를 남성혐오 표현으로 쓰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부 사람들은 컨텐츠 수정 및 삭제, 그리고 제작자의 사과라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그러할까. 대표적인 예로, 유튜버 보겸이 인사말로 사용하던 '보이루(보겸+하이루)'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할 때 쓰이는 단어로 변질된채 종종 사용된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번과 같은 방법으로 대응했을 때는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단어를 더 사용하며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무언가가 빠르게 변할 때 백래쉬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특히 그동안 억눌러있던 여성인권 신장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그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몇 년 전 살집이 있는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 '짤'이 유행했다. 그 그림 속 여성은 가방으로 뒷모습을 가렸고, 뒤따라오던 남성은 '안 봐 쌍년아'라는 대사를 외치며 여성을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이 그림은 '유머소재'로 활용됐다. 그리고 '개념녀' 검열에도 사용됐다. 페이스북에 서로를 테그하며 '나는 안 그래~', '자기는 예쁘니까 가려도 되고 뚱뚱하면 저럴 필요도 없어' 등의 댓글을 서로 주고받았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쳐 맞는다'라는 말이 통할 때다. 여성은 더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조신함을 미덕으로 지닌 여성의 삶이 아닌 과거의 잘못된 것을 꼬집을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권력은 없다. 성별 하나만으로 달콤함에 취해 있던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다. 키보드만을 두드리며 분출하는 분노는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뿐이다. '유난스런 계집애'가 아닌 똑똑한 여성으로, '시집 잘 갈 거 같은 조신한' 여대생이 아닌 대학생으로 불릴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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