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집 사기 힘든 정책 펼치자
거래 끊어 급등 차단 속셈 의심
무주택자엔 ‘대출 규제’로 압박

[컨슈머뉴스=오정록 기자] 정부가 2월 4일 공급대책 발표일 이후 주택 매수자에게 공공 중심 개발이 진행되더라도 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하기로 한 방침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 대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주택을 매수했다가 추후 해당 주택이 개발 대상지에 포함되면 상당한 재산상 손실을 볼 수밖에 없게 되면서 빌라 등의 매수세가 뚝 끊겼다.

일각에서는 2·4 대책 이면에 주택 거래를 끊어 가격 상승을 막겠다는 숨은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빌라와 아파트, 무주택자와 다주택자를 가리지 않고 주택을 매수하는 사람이 힘들어지도록 부동산을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대책 발표 직후부터 위헌 논란이 제기된 현금청산 방침에 대해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굳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7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행 토지보상법상 기존 소유자 재산 보상은 현금보상이 원칙이고, 감정평가 후 실시하는 보상은 헌법상 정당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국토부 역시 “개발 계획 발표에 따라 땅값이 들썩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정책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개발 계획과 상관없이 주택을 매수한 실수요자다. 토지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지난 4일 이후 매수한 주택이 개발대상에 포함되면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감정가격만큼의 현금만 돌려받게 된다. 다세대·연립주택의 경우 현재 평균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70.2%인 아파트에 비해 공시가격 현실화율도 낮다. 이 때문에 개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재산상 손해도 아파트보다 클 수밖에 없다. 가격이 많이 오른 아파트를 피해 역세권 빌라 등으로 선회한 실수요자로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치러야 할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아파트에 들어갈 돈이 없어서 빌라라도 사려고 했는데 이제는 절대 개발될 가능성 없는 비(非)역세권 빌라를 찾아야 하느냐” “역세권에 살고 싶으면 전세나 월세로 살라는 얘기냐” 등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빌라 매수세가 꺾이면서 아파트로 수요가 다시 몰리는 분위기이지만, 아파트 매수자 역시 부담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침에 따라 전체 아파트 평균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내년에는 71.5%, 내후년에는 72.7%, 2024년에는 75.6%로 계속 증가한다.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의 산정 기준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지난해 90%에서 올해에는 95%로, 내년에는 100%로 상향 조정된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결국 주택을 매수도, 보유도 하지 말라는 게 정부의 일관된 메시지 같다”고 꼬집었다.

집을 사지 않으면 현금청산을 걱정하거나 주택 보유 부담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임대차법과 입주 물량 감소, 저금리 등의 영향으로 전국 주택의 평균 전셋값이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6개월 새 5.97%(KB국민은행 기준)나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무주택자라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주택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대출 규제로 인해 내 집 마련은 요원할 뿐이다.

정부의 주택 보유 부담을 높이는 정책이 오히려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나는 월세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주택 월세 계약(확정일자 기준)은 7만3631건으로 1년 전보다 10.7%나 증가했다.

특히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의 월세 증가 폭이 컸다. 서울 아파트는 지난해 1월 월세 비중이 26.8%에 그쳤지만, 지난달에는 39.5%로 1년 새 무려 12.7% 포인트 늘었다. 월세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 전국 주택의 전월세 가운데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41.0%로 38.3%였던 1년 전보다 2.7% 포인트 증가했다. 아파트만 놓고 보면 지난해 1월 32.4%에서 올해 1월은 37.0%로 증가 폭이 4.6% 포인트로 커졌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임대차 매물이 급감한 상황에서 정부가 집주인의 보유세 부담을 높인 것이 현금 확보에 용이한 월세 비중을 높이는 등 조세의 전가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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