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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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1200개 넘는 의무조치 방대하고 모호해"
건설업계 "안전기준 강화 준비 중이지만 비용 부담"

[컨슈머뉴스=송진하 기자]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을 앞두고,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건설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안전관리는 기업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번 중대재해법은 의무조항 자체가 너무 방대하고 모호해 기업들 입장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처벌을 위한 법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시행 전 모호한 의무기준을 정비하고 안전관리에 드는 비용이 하위 업체에 전가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세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각 건설사들은 내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법에 맞춰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등 자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사업주 등 경영책임자를 징역형에 처하고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법이 시행되면 가장 영향을 받을 분야는 건설현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671곳 중 건설업이 382곳으로 전체의 56.9%를 차지했다.

건설현장에 끼칠 영향이 가장 크지만 문제는 이번 중대재해법에서 정한 기준이 너무 방대하고 모호하다는 데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기업이 준수해야 할 의무자체가 모호하다"며 "법상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조치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만해도 1200가 넘기 때문에 관리상 조치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 광범위하고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원청도 같이 처벌을 받게 한 것도 문제다"며 "원청이 제공하지 않는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도 연대책임을 지도록 한 것은 향후 논란의 소지를 불러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비용을 하위 업체가 떠안도록 조성된 구조도 문제다. 가령 현재 법이 정한 의무조치를 준수하기 위해 건설사가 건설현장에 안전펜스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관리 인력을 늘리는 등의 안전기준을 강화할 경우 비용이 추가로 드는 데 이 비용을 시행사가 아닌 시공사인 건설사가 모두 떠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시행을 맡고 민간 건설사가 시공을 맡아 아파트를 지을 경우 안전강화에 대한 추가 비용은 LH가 아닌 건설사가 부담하는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건설사들의 비용부담이 가장 큰 문제다"며 "시행령 등에 이에 대한 대책이나 개선점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은 건설현장에서 중요한 문제라 내부적으로도 유심히 지켜보며 논의 중에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면 최고경영자의 구속도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건단연)은 "대형 건설업체의 경우 한 업체당 거의 300개의 현장을 관리한다"며 "본사에 있는 CEO가 현장의 안전을 일일이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으며, 이젠 사고가 나면 범죄자가 되는데 과연 살아남을 기업과 CEO가 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한형(1년이상 징역)은 반드시 상한형 방식으로 고쳐야 하고 사고예방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면책하는 조항을 두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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