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를 고향 대신 해외를 택한 사람들이 당초 예상 110만을 훌쩍 넘어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경제가 어렵고 북핵 문제로 안보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데도 참으로 대단한 국민들이다. 그런데 명절에 누구와 그렇게들 여행을 나갈까? 미루어 짐작건대, 부모를 모시고 가는 사람은 드물고 나 홀로이거나 배우자, 자녀와 오붓하게 가는 여행이 훨씬 더 많을 듯하다. 그러면 추석 차례는 또 어떻게 하고 갈까? 아마도 생략하였거나 이른 성묘로 대체했을 것이다.

아무튼, 모처럼 나선 여행이니까 모두 견문을 넓히고 재충전하는 행복한 여정이 되었기를 기원한다. 다만 한 가지, 명절 때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고향에 살아계신 부모를 뵙지 않아도 되고 돌아가신 조상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기를 바라고 싶다. 왜냐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람답게 사는 도리를 지키는 것이 첫째이고, 또 그중 부모에 대한 효도와 조상에 대한 공경이 가장 먼저다.

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조상에 대한 공경이 제일가는 인간의 도리일까? 효도와 공경은 동물은 절대 못 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다. 효도는 동물적인 본능이 아니고 문화적 학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어느 나라보다도 이것을 철저히 가르쳤다. 어린 시절 무릎교육과 밥상머리 교육이 그 생생한 출발점이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별칭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근거한다. 40여 년 전에 방한했던 20세기의 석학 아놀드 로인비(1889–1975)도 바로 우리의 효도문화를 극찬했던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왜 효도를 이처럼 강조하는 것일까? 명백한 이치가 한둘이 아니다. 먼저, 효도는 나를 낳고 길러준 이 세상의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효도가 만행(萬行)의 근본으로 꼽히는 이유이다.

둘째, 힘 있고 능력 있는 젊은 자식이 쇠약해진 부모를 먼저 보살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어린 자녀만 보살피고 나이든 부모는 방치한다면 이는 윤리적으로도 용인될 수 없음은 물론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사회정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셋째, 부모에 대한 효도는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어 나를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든다. 내 입장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타자에 속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행위를 통해 상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과 배려를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노후 행복을 위해서도 효도를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데, 그 가운데 노인 자살률은 특히 높다. 노인자살이 거의 없던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몇 해 전 우리나라의 학대 받는 노인들에게 가해자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85%가 가족이라고 했단다. 작년에는 학대 장소를 물었더니 집이라는 답변도 90% 가까이로 나타났다. 집에서라면 가족 말고 누구이겠는가? 효도가 메말라가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효도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효도교육은 말만으로는 안 된다. 오직 내가 부모에 대한 효도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자녀가 그것을 따라 배우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이다. 이런 교육방식은 자녀가 어릴수록 효과가 크다. 이런데도 젊은 날의 처신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아계신 부모에 대한 효도는 저절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공경으로 이어진다.

효도와 공경은 위로는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를 공경하고 숭배하는 가풍을 만들고, 횡적으로는 형제 세대 간에 화목이 넘치는 끈끈한 인간관계로 뭉치게 하며, 아래로는 자라나는 후손들이 효도와 우애를 배우는 산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효도의 형식은 현실에 맞게 바꾸어나갈 수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명심할 것은 눈앞의 편의나 쾌락에 이끌리거나 육체적, 물질적 부담만을 회피하려고 가장 소중한 사람다움의 도리를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설날에는 해외여행 인파보다 귀성 인파가 더 늘어났다는 뉴스를 듣고 싶다.

※ 이 칼럼은 선사연에서 제공한 칼럼입니다.

김병일 (金炳日) 프로필

도산서원 원장,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전)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전) 기획예산처 차관, 장관

(전) 통계청장, 조달청장

컨슈머뉴스는 국제 의료 NGO ‘한국머시쉽‘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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