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빚 최대 95% 감면... "성실히 갚는 서민들 역차별"
대놓고 안갚는 '배짱 연체' 양산될까 우려

[컨슈머뉴스=안성렬 기자] 서민경제가 팍팍해지면서 채무조정제도를 신청하는 사람이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신청인만 10만 6천여 명에 달했다. 이처럼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금융 당국이 대책을 마련했다.

금융위원회가 18일 내놓은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방안’이다. 이 제도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특별 감면 프로그램을 제도화했다. 기초수급자와 70살 이상 노인, 1,500만 원 이하인 빚을 10년 이상 연체한 저소득층 등이 대상이다. 이들은 3년만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면, 부채 대부분을 탕감받게 된다. 일반 채무자는 원금의 최대 70%까지, 기초수급자 등 취약계층은 채무의 최대 95%를 감면해주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또 빚을 연체할 위험에 놓인 채무자를 돕는 제도도 마련됐다. 연체자로 등록되면 다른 금융혜택을 받기 어려운 만큼, 등록을 미루는 동시에 6개월 동안 상환을 유예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당국이 이러한 대책 시행을 위한 비용을 금융회사에 의지한다는 점과 함께, 자칫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채무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들은 “받을 수 있는 채무원금까지도 탕감해주면 도덕적 해이를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없는 살림을 쪼개 성실하게 꼬박꼬박 빚을 갚는 대다수 서민이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금융위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채무자의 고의 연체를 막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채무조정 신청일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은 대출을 연체해 발생한 미상각채권에 대해선 원금 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또 채무자의 가용소득이 상환액을 웃도는 신청자는 고의적 연체로 보고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수급자 등 사실상 상환이 불가능한 취약계층과 소액연체자에 대한 채무 지원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고, 신용도 양호한 은행권 일반 채무자에 대해서도 채무 탕감폭을 늘리는 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회수가 도저히 불가능한 취약계층 등에 서민금융대책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채무를 없애준다’는 잘못된 신호를 던져줄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위는 2017년 말 장기소액연체자를 대상으로 채무탕감 정책을 내놓으면서 ‘일회성 대책’이라고 강조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사실상 제도화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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