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수당 건당 2만7,000원 지급에도 상인들 시큰둥
제로페이 시범운영 첫날, 불편 지적 많아
신용카드 쓰던 소비자 습과 바꾸기 어려워

[컨슈머뉴스=김충식 기자] 서울시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0%로 낮추는 ‘제로페이’ 사업이 지난 20일 시작됐다. 그러나 사업 개시를 3일 앞둔 17일 현재 서울 소상공인 업체 66만곳 중 제로페이 가맹점은 2만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맹률이 3% 수준이다. ‘인기가 제로라서 제로페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시에서는 고액의 유치 수당을 지급하며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가맹점이 워낙 적어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제로페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민선 7기 핵심 사업이다. 휴대폰 앱의 QR 코드(고유 정보가 담긴 격자무늬 코드)를 인식하면 결제 대금이 고객의 계좌에서 점주의 통장으로 이체된다.

  지난달 22일 박 시장은 서울 신촌 일대와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등을 직접 돌며 제로페이 가맹점 유치 캠페인을 벌였다. 박 시장은 당시 한 상인에게 “(시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일단 가입해보라”며 “제가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상인은 “결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직접 사용해 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가맹점 3% 중에는 프랜차이즈가 약 70%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소상공인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한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시에서 적극 추진하는 사업이라 협조 차원에서 가맹점주에게 의사를 확인한 후 일괄 가입시켰다”고 밝혔다. 이처럼 확산이 지지부진하자 시는 지난 달부터 세금 수억원을 내걸고 가맹점 늘리기에 나섰다. 모집인이 한 곳을 유치할 때마다 2만5,000~2만7,500원의 수당을 준다. 신용카드사가 카드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건별 수당 1만5,000~2만 원보다 많다.

  시는 지난달 1일 중소기업중앙회 노란우산공제와 협약을 맺고 한 곳 유치에 2만5,000원을 걸었다. 지난 3일에는 예산 6억원을 배정해 가맹점 유치 전담 업체 두 곳과 계약했다. 두 업체는 한 곳 유치에 2만7,500원을 받는다. 목표치인 2만2,000곳을 채우면 총 6억원을 받아간다. 시는 제로페이 전체 사업 예산 30억원 중 절반 이상을 홍보비와 가맹점 유치 수당 등에 쓰고 있다.

제로페이 시범운영 첫날, 불편 지적 많아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던 제로페이가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미디어의 반응을 종합하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제로페이와 제휴한 앱을 켜고 지문인식을 하고 광고 팝업을 닫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하는데 대략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는 식이다. 실제 제로페이 시범 첫날 사용자는 수백명 수준에 불과했다.

제로페이는 자영업자들의 카드수수료를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QR코드를 찍으면 사용자의 통장에서 직접 돈이 가게에 전달되는 구조다. 다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서 돈이 오고 가는데도 은행수수료가 드는데, 이건 은행들이 그냥 공짜로 해 주기로 했다. 이런 구조가 과연 지속 가능하냐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울러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혜택이 애매했다. 서울시는 ‘소득공제’를 내세웠지만, 현재 카드사가 주는 혜택 들은 소득공제보다 큰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직불카드는 신용카드보다 소득공제가 많이 되지만, 많이 쓰이진 않았다.

제로페이가 신용카드를 없앨 수 있을까?
  서울시가 자영업자들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 지 그 밑그림이 공개됐다. 그러나 서울시의 의도대로 손님들이 제로페이를 많이 쓰고, 자영업자들의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은행은 수수료 안받기로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은행들이 계좌이체 수수료를 건당 몇 백 원씩 받아가기 때문에 거래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은행들이 이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안받는 건 아니고, 그냥 안받기로 했다. 은행간 이체 수수료가 사라지면 <제로페이>는 손님과 상인 사이에 돈이 오가도록 도와주는 휴대폰 앱의 운영비만 벌면 된다. 앱의 사용자가 많아지면 거래 한 건당 원가는 더 낮아지므로 결제 수수료가 거의 없는 결제 방식이 된다는 게 이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와 관련 업계의 밑그림이다. 

일단 연매출 8억원 이하 가맹점은 가맹수수료를 0%로 하고 12억원까지는 0.3% 그 이상은 0.5%로 결정했다. ‘소상공인’으로 범위를 한정했기 때문에 백화점, 골프장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의 수수료는 별도로 정하게 된다. 관전 포인트는 1. 손님들이 종전에 사용하던 신용카드를 꺼내지 않고 약간의 연말정산 혜택을 위해 앱을 깔고 휴대폰을 켜고 기꺼이 제로페이로 익숙하지 않은 결제를 할 것인가, 2. 제로페이의 결제 과정이 신용카드 결제와 비교할 때 시간이 더 걸리거나 번거롭지 않을 것인가, 3. 그리고 은행들이 송금 수수료를 계속 무료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이 이 정책이 자리잡을 수 있을 지를 판가름할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님들은 왜 제로페이를 써야 할까?
  문제는 가게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신용카드 대신 이 제로페이를 왜 굳이 사용할 것이냐는 것이다. 정부는 연말정산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한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비율을 높여주는 방식 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 의도대로 될지 미지수다. 특히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식당이나 극장 등에서 다양한 할인혜택을 받기 위해서인데 소비자들이 그 할인혜택보다 작은 연말정산 혜택만을 위해 제로페이를 사용할 지가 관건이다. 체크카드가 연말정산에서 더 많은 세금혜택을 받지만 체크카드를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다. 신용카드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쓰이게 된 것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치열하게 마케팅을 하고 거래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노력을 <제로페이>에서는 누가 하게 될지도 불안한 부분이다.

은행들은 계속 송금수수료를 공짜로 해 줄까?
  세번째 고민은 은행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송금수수료가 실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구조냐 아니면 은행들이 이익을 좀 줄이면 무료로도 계속 할 수 있는 구조냐에 따라 달라진다. 송금이라는 것은 돈이 오고간 기록을 전산으로 처리하는 전산비용이 전부여서 거래량이 많아지면 건당 단가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수는 있다.

제로페이란?
  지금은 가게에서 1만원어치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를 긁으면 가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1만원의 2.2% 인 220원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가게 주인이 신용카드 회사에 내야 한다. 참고로 한국은 상거래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카드 등 다른 결제수단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그만큼 상인들이 손님들에게 돈을 받는 과정에서 내는 수수료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의미이다. 상인들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엄살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만큼 유독 우리나라는 손님들이 카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이 수수료를 없애거나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낮추는 시스템이다. 신용카드 결제망을 사용하지 않고 손님의 은행 계좌에서 가게 주인의 은행 계좌로 바로 송금이 되는 방식이다. 그러려면 손님들이 제로페이 앱을 깔고,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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